◈동방한문학회 학술대회 축사◈

남명의 생애와 문학

朴 贊 石
(慶北大 總長)

오늘 동방한문학회 주최로 南冥 曺植의 生涯와 文學을 主題로 한 南冥學 學術大會가 열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참석자 여러분들을 眞心으로 환영합니다.

세상에는 歷史的 後光을 받아 위대하지 못했으면서도 위대하게 추앙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歷史의 뒷전에 가리워져 偉大했으면서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南冥 曺植 선생이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학자라고 하겠습니다. 南冥先生은 退溪와 견줄 수 있을 만큼 그 敎育的 影響力과 實效性이 컸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學界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거의 疎外되어 오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歷史의 왜곡 속에 묻혀 있는 南冥의 文學과 思想을 햇빛 속에 온전히 드러 내 놓고 그 위대했던 學問과 精神을 되살려 오늘을 살아가는 知性들의 귀감으로 삼는 일은 後學들의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南冥先生은 性理學을 함에 있어서도 당시 學風처럼 朱子學 一邊倒의 협애한 길로 빠지지 않고 學問을 實踐을 위한 하나의 準備로 보았습니다. “배운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안 배움만 못하고 오히려 罪惡을 범한 것이 된다”는 말씀이나, “큰 거리를 거닐면서 금은 보화를 보고 값을 논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다면 이는 한마리의 생선을 사들고 돌아옴만 못하다”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추상적인 學問을 경계하는 先生의 態度를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나약한 선비가 아니라 勇氣있는 書生이었습니다. 民權을 운위하고 歷史를 중시하였습니다. 學問 思想 자체가 막힘이 없이 툭 트여서 四色黨派와 같은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찮은 벼슬에 연연하여 구차스럽게 녹을 구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아울러 權力 앞에서도 대의를 거스르지 않았고 官權에 맞서 官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士林의 힘을 길렀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태도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도 보다 높은 大道와 절실한 民生의 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다는 하나의 전범이 되었습니다. 先生의 門下에서 정인홍과 같은 쟁쟁한 儒賢과 明官들, 그리고 곽재우와 같은 국난을 구한 義兵將들이 배출된 것은 바로 선생의 學問과 思想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특히 후학들이 주목해야 할 部分이 先生의 學問世界라고 생각합니다. “學問의 敎養을 넓혀 먼저 하나의 人間을 구축하는 바탕을 튼튼히 하고, 그 위에 自我를 정립시키고 萬事 萬變에 응해 나가는 能力을 기른다”는 선생의 학문적 방법은 基礎敎育에서 철저히 自發 能力을 길러주고 그것으로 평생토록 학문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오늘의 敎育體制가 수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博學과 集約, 즉 크고 넓게 알면서도 극도로 축약하여 적게 표현하는 謙遜의 선생의 學問的 態度는 後學들의 龜鑑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이러한 南冥 先生의 學問과 思想은 退溪, 栗谷선생처럼 좀더 철저히 고증되고 발양된다면 우리는 훨씬 깊어지고 넓어진 朝鮮朝 儒學思想 體系를 가지는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세미나가 이제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南冥先生의 學問과 思想, 그리고 선비정신의 探究에 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번 오늘의 學術大會를 祝賀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1995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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