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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92. 김담수(金聃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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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34회 작성일 03-10-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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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김담수(金聃壽, 1535∼1603)의 자는 태수(台)이고 호는 서계(西溪)이며,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성주(星州)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5년(중종 30년)에 아버지 참봉 관석(關石)과 어머니 순천 박씨 사이에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문인067.jpg

그가 남긴 자료는 『서계일고(西溪逸稿)』 3권 1권 이 전한다.
수학 및 교육 : 김담수는 일찍이 남명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웠고, 오건으로부터는 『심경』과 『근사록』을 배웠으며, 황준량(黃俊良)으로부터는 『중용』과 『대학』을 공부하여 많은 칭찬을 받았다.
급문 : 그는 일찍이 남명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남명선생으로부터 금우쇄락(襟宇灑落) 학술고명(學術高明)이라는 칭찬을 들었다(『西溪先生逸稿』, 卷3, 附錄, 「行狀」).
그는 주로 도학을 닦고 후학의 진흥에 힘썼으며, 선조 임금으로부터 황계처사(黃溪處士)라는 호와 더불어 황매(黃梅) 한 그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과거 및 벼슬 : 김담수는 30세(1564년)에 식년 생원 제3등으로 합격하였으나(『司馬榜目』), 건강으로 인해 과거를 포기하고 두문불출하면서 경전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는 항상 가내법규를 엄중히 지키면서 친척간에 친애하고 불의를 행하지 말 것을 언제나 강조하면서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
1591년 김담수(57세)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 참봉(繕工監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강학 및 교유 : 그는 오건, 정구(鄭逑), 김우옹, 황준량 등과 시서(詩書)를 공부하였고,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어진 이를 항상 가까이 하고 선행을 즐겼으며, 모든 행실을 겸손하게 하였다. 그는 특히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김담수(58세)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산으로 피난하였다.
향사 : 그는 1603년(선조 36년)에 세상을 떠난 후 성주의 청천서원(晴川書院)에 제향되었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金聃壽, 『西溪逸稿』 3권 1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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